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몰타 항공전 (문단 편집) == 1차 공방전: 1940년 6월 ~ 11월 == 1939년부터 이탈리아의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영국은 몰타에 대공포와 전투기 편대를 배치하여 방어태세를 갖춰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서류화된 계획상으로만 그랬다는 점이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고 본토의 위협이 가시화되자 모든 군수물자와 병력의 우선권이 영국 본토로 돌려졌고, 그 까닭에 이탈리아가 [[선전포고]]를 했던 시기에는 대공포는 계획에 비해 고작 25%도 설치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방공임무를 수행할 [[전투기]]는 단 1대도 배치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그나마 조기경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레이더]]가 설치되었다는것과 섬 곳곳에 천연 방공호가 많다는 점이 위안 아닌 위안이었지만 전투병력이 경비대 정도로 턱없이 부족해서 본토에서는 몰타에 적병력이 상륙하면 포기할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다행히 영국 [[항공모함]] 글로리어스가 몰타섬에 잠시 정박했을 때 서류상 착오로 [[함재기]]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시 글래디에이터]] 4기를 몰타섬에 내려놓았다가 선적하지 않고 떠나버렸고, 이 사실을 확인한 몰타섬 방어사령관이 [[영국 해군]]에 애걸복걸하여 이 4기의 [[복엽기]]를 인수하여 간신히 방공전투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 기는 폭격으로 파손되어 예비부품용으로 해체되었고, 나머지 3기의 복엽기는 방공전에서 맹활약하며 Faith(신념), Hope(희망), Charity(자애)란 별명과 함께 사랑받게 됐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왕국군]]이 신속하게 상륙부대 또는 공수부대[* 본 문서에 '이탈리아의 공수부대는 어디까지나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공수부대'''였다'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출처 표기 요망.]를 파견하여 점령했을 때 영국이 몰타섬을 영구적으로 상실했을 가능성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으나 1990년대 이후의 연구 결과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해군력의 차이. 먼저, 개전 직전 취역했던 [[리토리오급 전함]]에서 전기 회로 계통 관련 문제가 생기면서 리토리오/비토리오 베네토 2척 모두 작전 투입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리토리오급 전함 2척은 해당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8월 말부터 작전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이탈리아 측의 가용 전함은 구형 전함을 마개조한 4척 뿐으로 영국 측의 15인치 주포를 장비한 전함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이 시기는 [[캐터펄트 작전]]을 위해 영국 해군 쪽에서 H 기동함대(Force H)가 막 만들어진 시점으로 H 기동함대에만 당 시기 최대 크기의 전함인''' [[HMS 후드]]'''를 포함해 15인치 주포를 장비한 전함 3척이 존재했다. H 기동함대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영국 지중해 함대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3척 등도 건재하였으므로 몰타를 일시적으로 점령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영국 측에서 압도적인 해군력 차이를 통해 단기간 내에 수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여기에 이탈리아 해군 내에서도 '''설마 무솔리니가 참전을 결의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던 관계로''' 1940년 5월 29일까지 공세적 작전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선전 포고가 임박한 시점에서야 작전 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했다.[* O'Hara, Vincent P.; Celnuchi, Enrico(2010). On Seas Contested: The Seven Great Navies of the Second World War. Naval Institute Press.] 하여튼 여러가지로 꼬인 상황에서 이탈리아 측은 확실한 점령 계획도 정하지 못한 채 일단 공군을 투입하여 몰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이탈리아 공군은 그럭저럭 다른 유럽의 추세에 맞춰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매우 열악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주력 전투기는 [[호커 허리케인|허리케인]]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준으로 평가를 받던 [[C. 20x 시리즈#s-2|마키사의 C. 200 사에타]]가 채택된 상황이었으나 관료주의의 고질적 무능함이 폭발한 끝에 2차대전 최고의 '''복엽기'''로 손꼽히는 [[CR. 42]]가 실질적인 주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폭격기]] 역시 3발 폭격기로 설계된 [[SM. 79]] 기종을 주력으로 투입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이탈리아의 엔진기술로는 도저히 쌍발 폭격기를 만들 수 없어서 차선책으로 동체에 엔진을 하나 더 달았던 것. 이로 인해 폭장량이 크게 감소됐으며, 조준기조차 가장 이상적인 동체 중앙선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치게 장착되어 폭격의 정확도마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요소는 [[영국 공군]]에게 호재로 작용하여 이탈리아 공군과 그럭저럭 붙어볼만한 상황을 연출해냈다. 게다가 폭격기 편대와 전투기 편대끼리의 호흡도 맞지 않아서 고작 3기의 글래디에이터에게 폭격기가 격추당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물론 방공기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므로 영국군 역시 꽤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으며, 주요장소인 [[발레타]]항과 비행장 상공에서 이탈리아 공군을 간신히 쫓아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다행히 몰타섬에서 미친듯이 외쳐대는 헬프콜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기에 영국 본토에서는 [[호커 허리케인]] 4기를 자출하여 6월 21일 몰타에 배치했다. 고작 4기에 불과한 증원이었지만 당시 허리케인은 이탈리아의 모든 기종을 상대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약간 상황이 호전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방공기의 규모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몰타섬에는 연일 폭탄이 떨어지고 있었다. 또한 계속되는 이탈리아군의 공격으로 발레타항과 그 주변이 위험해지자 영국의 보급선단이 몰타섬에 입항하지 않고 건너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물자 부족으로도 상당히 고생을 하게 됐다. 이후 이탈리아가 북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 병력을 파견할 움직임을 보이자 영국 본토에서는 8월 2일자로 12기의 허리케인을 추가로 증원했다. 이 역시 몰타의 상황을 뒤엎을 정도의 수준은 못됐지만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이탈리아군은 여전히 몰타에 폭탄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발레타항은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고, 틈틈히 보급선단이 몰타에 기항하여 부족하게나마 물자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1940년 9월, 여전히 몰타섬 상공에서는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이탈리아군이 이집트 공격을 시작하는 바람에 모두의 관심이 이집트로 쏠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말았지만 이로 인해 몰타는 한 차례 큰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됐다. 결국 이탈리아는 몰타섬 공략에 실패했으며 이로 인해 11월부터는 몰타에 대규모로 배치된 폭격기와 [[뇌격기]]들이 이탈리아 수송선단을 사냥다닐 정도로 상황이 호전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